[도서] '여행의 이유' 문장

 

 

 

여행의 이유
국내도서
저자 : 김영하(Young Ha Kim)
출판 : 문학동네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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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1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P82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P196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 있더라도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P203

우리는 뭔가를 하거나,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떠나면 그만이다. 잠깐 괴로울 뿐,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P203-205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잠깐은 재미있다. 하지만 금방 지루해진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는 다르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더욱 몰입하게 된다. 소설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끌어들인다.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 거의 없다. 나중에 일어날 일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재미있는 일들을 집어넣는 게 아니라 무의미한 사건들을 배제하면서 쓰인다. 독자들은 일종의 실험실적 환경에서 인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을 인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것이 인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지켜볼 수 있다. 인간과 세계가 좀더 높은 해상도로 다가온다.

  여행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집중시킨다. 우리는 한 도시의 핵심으로 돌진한다. 변두리의 단조로운 주택가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겪는 자잘하고 어지러운 일상을 잠깐 맛볼 수는 있지만 오래 지속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여행자는 도시의 정수만을 원한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살핀다. 현지인들은 심드렁하게 지나치는 건물과 거리에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댄다. 여행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