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댓글부대' 문장

 

 

 

댓글부대
국내도서
저자 : 장강명
출판 : 은행나무 20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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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57

'한때는 인터넷이 영원히 익명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헛소문이나 추측, 잘못된 정보가 많이 나온다는 건 그때도 알았어. 그래도 좋은 정보가 많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자기 생각들을고칠 줄 알았어. 자정작용이 일어날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아.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사람들이 어떻게 TV를 보는지 보라고. 채널 돌리는 것도 귀찮아서 광고를 그냥 참고 보잖아. 인터넷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치려 들지 않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려 드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보니 학교나 직장처럼 다양한 인간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도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 그런 데서 오래 지내다보면 어떻게 되겠어? 처음에는 집 꾸미기나 육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커뮤니티에 가입하지. 거기에서 시댁이나 남편 욕도 같이 하고, 산후우울증 이야기에 공감도 해주면서 그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애착심이 생겨나지. 직장 다니면서 애 키우려니 힘들어 죽겠고, 지하철에서는 늙은이들이 자리 비키라고 행패를 부리니 이놈의 한국 사회 정말 짜증난다, 누가 그렇게 글을 올리면 폭풍 공감이라는 댓글들이 우르르 달리지.

그런데 왜 사회가 바뀌지 않지? 그건 기득권 탓이고, 정부와 재벌과 언론이 그 기득권과 결탁해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는 댓글을 쓰는 한 사람을 다른 아홉 사람이 불편해하고 은근히 따돌리게 되네. 온전한 진보주의자 열 사람이 모여서 시국을 논의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중 세 사람은 극좌파로 변하게 돼.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사람들은 자기가 극단적이라는 사실도 몰라. 왜냐하면 자기 옆에 있는 아홉 사람의 평균 의견이 자신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기제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사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두 번째 문단 커뮤니티는 편향돼 있다는 부분. 커뮤니티 활동은 해본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치도록 일조하는 것엔 맞춤 뉴스, 유튜브의 맞춤 채널 추천 등이 있을 것 같다. 사용자가 관심 있게 읽거나 본 것을 계속해서 추천하고, 조금씩 더 자극적인 내용을 추천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소셜 딜레마'에서 SNS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미국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점점 양극으로 치달았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네 번째 문단. 내 이종사촌이 중3~고1?2?때 페이스북을 엄청 열심히 했었다. 이때쯤 얘가 말하는 것들이 좀 이상했다. 지나치게 좌로 치우친 느낌.(반대에 적대감을 갖고 있어 좌라고 한거지 진짜 진보적이라 할수는 없을 것 같다.) 정치색을 갖는 것이 나쁘단게 아니다. 강하게 비판하는데 근거가 부족했다. 말하는 내용들이 죄다 나도 한 번쯤 본 인터넷에 떠도는 그렇게 길지 않은 선동글과 같았다. 그것이 절대적이라 믿고 있었고, 다른 말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엔 스스로 깨닫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그때 얘를 보면서 네 번째 문단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P76

인터넷의 법칙이에요. 특히 여초 사이트에서는 더 그래요. 그런 반공개형 게시판에서 유명한 사람을 인터넷 용어로 '네임드'라고 해요. 그런데 그 ▬게시판은 다들 쿨하고 시크한 척 자랑하기 바쁜 곳이에요. 네임드가 되려면 남들보다 더 쿨하고 더 시크하고 더 진보적이어야 하는 곳이죠. 남을 알게 모르게 까 내리고 은근히 잘난 척을 해서 추종자와 워너비들이 생기면 네임드가 되는 거죠. 그만큼 뒤에서는 '어디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하고 벼르는 사람도 생기는 거고.

이 때다 하고 덤벼드는 댓글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