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문장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땡큐 에디션)
국내도서
저자 : 박막례,김유라
출판 : 위즈덤하우스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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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막례쓰

나는 나름 계모임에서 여행을 꽤 다녔던 사람이었지만 자유여행이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근디 공항에 도착하니 내가 여태 다녔던 공항과 어째 다른 느낌이다. 우리는 정부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누구 하나 화장실 갈 때도 손잡고우루루 다녔제.

근디 유라랑 둘이 오니까 오메 오메 이게 뭣이랑가.

공항이 이렇게 넓었당가? 이게 뭔 일이랑가.

 

커피도 마시고 내 맘대로 화장실도 쏘다니고.

이게 자유여행이구나!

 

 

p127

  막례쓰

일본 모래밭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언젠가 길 가던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이러더라.

 

"모래밭을 걸어봤소?"

"아뇨, 왜 그러세요?"

"당신 지금 심정이 모래밭에서 걷는 심정이오."

 

할아버지는 그 말만 하고 걸어가더라.

나는 그 말이 뭔 말인지 몰랐다.

근디 일본에 와서 처음 모래밭을 걸어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기분.

 

그때 그 할아버지가 한 말이 딱 떠오르더라.

그때 나는 세상 처량하고 팍팍한 세상을 살고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p231-232

할머니는 술을 전혀 못 하신다.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스트레스 받거나 하면 어떻게 푸냐고. 그랬더니 할머니 말씀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단다. 열받는 즉시 말로 다 푸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러긴 어려운 법인데 할머니는 정말 뒤끝이 없다. 때로 할머니가 고모나 누군가와 싸우더라도 그때는 화가 나서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해놓고 다음 날이 되면 완전히 까먹는다.

유튜브를 보고 할머니 성격이 세서 무섭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할머니 성격 좋다. 어느 한쪽이 꽁해서 그게 오래가면 사이가 틀어지기 쉬운데 할머니는 싸우거나 화를 내도 얼마 안 가 '리셋'이 되니 참 좋다.

 

한번은 호주에서 어떤 아이가 길에서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아이가 떼를 써서 부모가 "너 여기 있어" 하고 가버린 척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뚜벅뚜벅 가더니 그 아이를 안아 올렸다. 외국에서는 남의 아이를 만지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번쩍 안아 올리다니, 나는 너무 놀랐다.

 

할머니는 그 아이가 자존심 때문에 부모한테 못 가는 걸 알아챈 것이었다.

"오구구, 내가 데려다줄까?"

 

할머니가 아이를 부모에게 데려다주니 다행히 그 부모도 활작 웃으며 "땡큐! 땡큐!" 인사를 했다.

그때 할머니가 산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아이 엄마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며 할머니에게 찡긋 눈인사를 보냈다.

"오~! 너 지금 산타 할머니가 데려다줬네?!"

 

완전 바뀐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내가 사랑한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다.

착하고 귀엽고 재미있고 정 많은 할머니!